고승덕 선생님이 우리 학교를 처음 찾아온 날은 2012년 5월 8일이었다.
그가 어떻게 우리 학교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유명 인사의 뜻밖의 방문에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그는 우리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멀리 그리고 깊게 생각하라’,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그리고 이십 여일 뒤에는 우리 아이들을 국회로 초청하셔서 국회를 견학시켜 주시고 여러분도 국회의원이 되어 국회에서 일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아이들에게 자꾸 좋은 꿈을 심어주시는게 감사해 ‘다음 학기에 우리 학교에서 아예 강의를 좀 맡아주십시오’하고 무심코 부탁드렸다. 그런데 얼마 뒤 그렇게 하시겠노라고 답변을 주셨다. 다른 대학에 겸임교수 자리가 있었지만 그걸 포기하고 오히려 우리 다문화 대안학교를 선택하셨다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했다.
고 선생님은 다문화 가정 학생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시고 큰 액수의 후원금도 선뜻 내놓으셨다. 우리는 그 후원금으로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비와 겨울철 난방비를 지원할 수 있었다. 그해 9월부터 한국어(토론) 강의를 맡으신 고 선생님은 정말 성실하게 출강해 주셨다. 대학원 박사 과정도 함께 하시느라 바쁘셨을텐데 식사 시간 아끼느라 김밥을 손에 들고 다니시면서도 결강하지 않으셨다. 학생마다 각자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하나씩 만들어 와 나눠주시면서 의젓하게 앉아 남을 배려하며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수업할 때마다 ENG 카메라를 갖고 오셔서 자신의 수업 장면을 찍어 모니터링 하면서 더 좋은 수업을 위해 연구하곤 하셨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선생님 덕분에 점점 용기를 얻어 자기 생각을 글로 쓰고 발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느새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보라매공원과 PC방을 전전하며 공교육에서 멀어져 갔을 다문화가정 아이들인데... 정규 고등학교에서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얼마 전 고 선생님이 교육감 후보가 되어 공보물에 등장하자 아이들은 선생님 사진을 들고 돌아다니며 너무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아이들은 교육감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우리 선생님이 길거리 선거 벽보에 나오셨다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평생 좋은 추억 거리를 갖게 되었구나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나는 너무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 따님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나는 따님의 글을 읽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나는 이번 일로 인해 고 선생님의 자녀들이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고 선생님이 수많은 교육 소외자 중에서도 특히 우리 다문화가정 대안학교를 찾아와 봉사하시는 이유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인터넷에는 고 선생님과 관련된 글이 퍼져 있었다. 이틀 밤을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난 2년여... 우리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자녀처럼 사랑해 주시고 품에 안아주시던 고 선생님의 모습과는 너무 동 떨어진 이야기들이었다. 우리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그렇게 나쁜 선생님에게 공부를 배우고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교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고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분은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낯선 땅 대한민국에 처음 발을 디딘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고마운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그가 교육감에 당선되든 안되든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 늘 웃으시며 수업해 주시던 고 선생님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아빠 때문에 속상해 하는 캔디 고에게 전해 주고 싶다. 당신의 아빠 고 선생님은 이 땅의 나그네된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한 선생님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