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입국자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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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애 작성일20-05-17 12:05 조회5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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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0. 조선일보 김효정  기자 soboru@chosun.com

▲ 지난 6월 5일 경북 안동시 병산서원을 찾은 중도입국 청소년 대안학교 글로벌국제학교의 학생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5일 경북 안동시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병산서원 앞마당에 33명의 청소년들이 모였다. 인솔하는 교사 9명은 모두 한국인인데 따라오는 청소년들의 국적은 다양해 보였다. 베트남어, 중국어, 몽골어에 러시아어까지 섞인 다양한 국적의 청소년들. 이들은 대안학교인 부산 글로벌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국 청소년들이다.
   
   병산서원의 해설사가 마이크를 들었다.
   
   “병산서원은 지금의 사립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청소년 중 한 명이 큰 목소리로 물었다.
   
   “‘사립’이 뭔가요?”
   
   오세련 글로벌국제학교 교장이 나서서 설명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공립학교’예요. 글로벌국제학교처럼 한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는 ‘사립학교’입니다.”
   
   아이들의 한국어는 유창하지 않았다. 마치 외국에서 갓 유학을 온 것처럼 한국어 발음이 매우 서툰 학생들도 있었다. 베트남의 남부 도시 껀터(Can Tho)에서 온 19살 닷은 그중에서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편이었다. 닷은 글로벌국제학교에서 중학교 졸업 자격을 얻고 부산의 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1년 더 국제학교에 머물기로 결정한 터였다.
   
   닷은 베트남인 어머니의 재혼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원래는 어머니 혼자 한국에 와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에 있을 때는 친아버지와 함께 살거나 할아버지, 삼촌 집을 오갔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부름으로 부산에 정착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한국어도 못 해서 학교에 갈 수도 없었어요.”
   
   교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닷의 한국어 구사능력은 한국인의 70%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 공교육 시스템으로 편입하려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세련 교장은 “이런 친구들은 운이 매우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고, 배운 한국어를 가지고 일반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진학하고 취직하는 것은 모든 중도입국 아이들의 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아요.”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오 교장의 말이다.
   
   
   중도입국 청소년 1만2800명 추정
   
   최근 사회문제로 점차 부각되고 있는 중도입국 청소년이란 다문화가정 청소년 중 주로 외국에서 성장한 청소년을 일컫는다. 부모가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입국했다가 뒤늦게 자녀를 한국으로 데리고 와 정착시킨 경우다. 외국 국적의 어머니가 한국 남성과 재혼하면서 입국한 청소년도 많고 일하러 한국에 왔다가 아예 정착할 마음을 먹은 부모를 따라서 한국에 온 청소년도 더러 있다. 한국에서 살 생각으로 입국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청소년이 대개 문제가 된다.
   
   글로벌국제학교 아이들과 달리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중도입국 청소년은 많다. 베트남의 수도 호찌민시에 사는 응우옌이 그렇다. 그는 2013년 15살의 나이에 서울에 왔다.
   
   “한국에서 마사지 일을 하던 엄마가 한국 아빠를 만나 재혼하게 되면서 한국에 왔어요. 처음에 한국에 가게 됐을 때 베트남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했어요.”
   
   응우옌의 한국어 실력은 의사소통을 겨우 할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에 통역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3년부터 6년을 꼬박 한국에서 살았는데도 그렇다.
   
   “막상 한국에 왔더니 엄마는 일을 하느라 일주일 내내 집을 비웠어요. 한국 아빠는 나쁜 사람이었어요.”
   
   술을 마시면 손찌검을 하곤 했다는 그의 한국 아빠는 응우옌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것과 딸의 학교 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일을 하느라, 한국 아빠와의 사이에서 낳은 응우옌의 이부동생을 돌보느라 하루 종일 피곤한 얼굴로 살았다.
   
   “한국 학교에 처음 갔었는데 한국말을 못 하니까 선생님들도 처음에는 도와주려고 하다가 점점 투명인간처럼 살게 됐어요. 학교에 안 나가도 연락도 안 오게 되었어요. 낮에는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죽이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반복됐어요.”
   
   한국 아빠는 응우옌이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가지 않았다. 경기도 이천시와 오산시의 공장을 전전하면서 돈을 벌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한국인이 되어서 한국에서 살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서의 시간이 그저 아깝기만 하네요.”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응우옌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베트남에서 온 응우옌의 중도입국 청소년 친구들 중에는 베트남 가족들과도 연이 끊기고 한국어도 서툰 경우가 있다. 그런 친구들은 베트남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중간한 정체성으로 한국에서 계속 머물고 있다. 그들의 침대는 공장 기숙사에 있고, 할 줄 아는 한국어는 열 마디가 고작이다.
   
   지금 중도입국 청소년이 얼마나 되는지 명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없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다문화가정 실태조사를 보면 만 9세에서 24세까지 다문화가정의 자녀 8만2476명 중 국내에서 성장한 자녀는 60.8%다. 23.7%는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고, 우리가 중도입국 청소년으로 분류하는 ‘주로 외국에서 성장한 청소년’은 15.5%다. 약 1만2800명 정도로 추정된다.
   
   문제는 이들의 한국 사회 적응과 관련된 것이다. 조사를 보면 중도입국 청소년 중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청소년은 43.4%에 불과했다. 국내에서만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의 91.3%가 학교를 다니는 것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 실력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24.6%의 학생이 한국어 실력이 충분하지 못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자 문제나 입학절차의 문제 같은 행정적인 문제를 꼽은 사람은 각각 5% 남짓에 불과하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 청소년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조사해봤다. 중도입국 청소년 중 37.7%가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닌 니트(NEET)로 드러났다. 한국에서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의 11.2%만이 니트인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그나마 직장에 다니는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에도 직업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다.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직은 남성 1.6%, 여성 5.0%에 그쳤고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남자 중도입국 청소년이 41.6%나 됐다. 대다수 여자 청소년은 판매직(26.7%), 장치·기계조작·조립(23.8%), 단순노무직(23.6%)에 종사하고 있었다.
   
   

   가장 큰 장애는 언어
   
   중도입국 청소년의 적응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언어다. 한국어를 모르는 채로 부모의 결정에 따라서만 한국에 오는 사례가 대부분이라 한국에 입국하고 나서야 한국어를 배우는 청소년이 많다. 그러다 보니 공교육 기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또래 집단과 전혀 어울릴 수 없다. 학교폭력 문제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가정에서 신경을 써서 한국어 교육을 하면 좋겠지만 중도입국 청소년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중도입국 청소년이 입국하기 전 부모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3년 이상인 경우가 전체의 41.8%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참을 떨어져 지내 서먹해진 부모인데, 막상 한국에서도 떨어져 지낼 때가 많다.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온 21살 이지신은 한국에 온 지 6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어가 서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여러 번 옮겼는데 그 사이 부모의 보살핌은 거의 받지 못했다. 지신의 어머니는 서울에 일을 하러 갔고 재혼한 아버지는 지신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 결국 지신은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일을 하다가 보니까 한국말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 부모와 함께 살게 됐는데 심리적인 갈등을 겪을 때도 많다. 오세련 교장은 한 아이의 예를 들었다.
   
   “엄마는 재혼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살고 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버린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뒤늦게 엄마가 아이를 한국으로 불러왔지만 마음의 상처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17살 장수현(가명)은 얼마 전 자신을 돌봐주던 청소년 상담사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어머니와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아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상담사는 “중도입국 청소년이 가족과 겪는 갈등의 깊이는 생각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살게 하겠다고 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데리고 왔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적응하기 어려워요. 부모가 관심을 갖고 적응을 도와주지 않으면 ‘때’를 놓치기 쉽습니다.”
   
   장수현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문제였다. 중국 지린성 옌볜에서 온 장수현의 어머니는 ‘잘 적응한 조선족’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중국어를 쓰거나 중국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을 못 하게 했대요. 빨리 적응하라고 학원도 보냈다고 해요. 아이는 학원에서 ‘짱깨’ 소리를 들으면서 왕따를 당하는데 그걸 아이가 적극적으로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고 치부했다고 하네요.”
   
   또는 가정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도 많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자녀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부모들도 교육 정보를 취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경제적인 이유로 맞벌이가정이 많아 다방면에서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중도입국 청소년 가정을 위해 최소한의 매뉴얼이라도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그걸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은 거의 없고 그나마 시민단체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설 교육기관이 전부다.
   
   이렇다 보니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취직·진학 같은 진로 문제, 경제적 문제, 목표의식이 부재한 현재에 대한 문제 같은 것들이 주로 꼽힌다.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는 어찌 배운다 하더라도 직업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고, 직업교육 자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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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입국 청소년 돕는 몇 가지 요인
   
   중도입국 청소년이 이대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사회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오세련 교장은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학교를 거쳐간 학생이 160명이 되지만 개중에는 위태위태한 학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애매한 정체성의 청년이 갈 곳은 별로 없다. 단순노무직으로 머물거나 유흥가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게 고작이다.
   
   이미 중도입국 청소년 문제는 유럽·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는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일본에서는 중도입국 청소년을 ‘귀국 자녀’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는데 이들의 교육을 위한 교과과정이 2000년대부터 마련돼 있다. JSL(Japanese as a Sencond Language)이라는 이름의 교과과정은 언어 교육은 물론 일본 문화와 사회에 대한 교육까지 체계적으로 진행하게 꾸려졌다. 이를 위한 교원 연수프로그램도 충분히 마련돼 있다.
   
   난민·이주민 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독일에서는 행정구역마다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 독일어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거의 모든 중도입국 청소년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을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시키고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하는 요인이 뭘까를 생각해 보면 필요한 정책이 떠오른다. 베트남 껀터에서 온 16살 이우진은 글로벌국제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되는 이우진의 한국어 발음은 원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매끄러웠다.
   
   “6학년 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어도 못 해서 학교에서 적응을 못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한국어도 베트남어도 할 수 있게 됐죠. 제 꿈이 ‘이중국어’를 하는 사람으로 쓸모 있는 인재가 되는 거예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먼저 취직하고 나중에는 대학에도 가고 싶어요.”
   
   그의 한국어 교육을 맡아왔던 오세련 교장은 이우진의 부모가 교육에 열성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선 가정의 분위기가 매우 좋아요. 한국 아버지는 우진이를 진심으로 아껴주죠.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은데 두 분 다 교육열이 뛰어나요.”
   
   실제로 전문가들의 여러 연구를 보면 부모와의 관계는 중도입국 청소년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우울감을 낮추며 효과적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오승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이주배경 청소년에게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과 비교해 봤을 때 중도입국 청소년에게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때문에 중도입국 청소년 문제를 다룰 때에는 우선 중도입국 청소년 가정에서 문제 해결의 시발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다문화(이주배경) 청소년이라는 용어로 두루뭉술하게 하나로 묶어왔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배상률 부연구위원은 “이들만을 위한 별도의 교육 시설이나 커리큘럼, 취업·진로 안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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