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생활수기-또 하나의 삶] 여기에 살고 있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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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애 작성일20-10-19 14:51 조회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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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생활수기-또 하나의 삶] 여기에 살고 있는 의미가 있었다



[다문화 생활수기-또 하나의 삶] 이즈미야마 시가코 (54·세종시 전의면)

24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 후 이주 사전 들고 다니며 한국어 공부 매진

고등학교 원어민 강사로 생활 큰 보람 강의 없을 땐 전의 홍보관서 근무

바리스타 등 각종 자격증 취득도

한일관계 경색 땐 마음 무겁지만 한국 향한 애정·시민의식 충만

 

1996년 일본에서 충남 연기군으로 시집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한 일본 아가씨였던 저는 며칠 만에 그 생각을 접고 죽어라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높은 언어의 장벽을 실감했고, 여기서 행복하게 살려면 한국어 실력이 필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시엔 다문화가족센터 같은 외국인을 도와주는 기관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휴대전화도 없었던 그 시절에 일본에서 사온 작은 한일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한국어 속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듣기·말하기·쓰기·읽기 전부 못했던 저는 항상 머리가 아팠습니다. 조금 살다보니 눈치도 생기고 한국어 센스도 늘어 한국어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됐을 때 첫째가 태어났습니다.

일본인 엄마가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니 걱정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나 한국어 발달이 더딜까 싶어 일본어를 가르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한국어 교육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딸이 가끔 말합니다. “엄마는 정말 무서웠어요.” 그렇습니다. 정말 엄하게 키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반성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가 내 자존심 때문에 아이들에게 엄하게 했었구나.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저는 죽을 때까지 미안함을 갖고 살 것입니다.

둘째가 유치원에 들어간 후 저는 일본어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일관계가 좋을 때는 일자리가 많지만 한일관계가 악화하면 일자리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때마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 13년 동안 일본어를 가르쳐왔습니다.

그런데 2019년만큼 마음이 힘들고 무거운 해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 불매운동’ ‘NO JAPAN’ ‘NO 아베’, 길을 걸을 때마다 보이는 스티커가 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국 분들이 제게 많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국이 아닌 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외국인이 똑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외국에 살아도 고국 사람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부정당하면 제가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긴장이 다소 풀리면서 제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두가지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는 고등학교에서 원어민 일본어 강사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원어민 일본어 강사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고, 일본인이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일하고 있다는 것이 아주 행복합니다.

또 하나는 제가 사는 지역을 위해 일하게 된 것입니다.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세종시 전의면의 전의 홍보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컴퓨터 작업을 하고 여러 업무를 보조하며 바리스타 일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합니다. 저는 다문화센터·사회복지관·적십자 등 여러 기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컴퓨터 관련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 통역사 자격증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제게 배울 기회를 줬고, 저는 최선을 다해 그 기회를 모두 잡았습니다.

저는 제가 한국에서 받았던 혜택을 활용해 대한민국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근했을 때 내가 여기에 온 건 행운인가?”라는 말을 하면서 매우 기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전의 홍보관은 전의역 앞에 있습니다. 전의역 앞 도로는 만세길입니다. 그렇습니다. 19193전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2020년 지금 저는 100년 전 전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바로 일본인인 제가 이곳에서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제가 그냥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아니라, 제 삶의 중요한 의미가 여기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오게 됐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이 지역에 도움되는 일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날들에 감사하며 매일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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